[503호는 없습니다] -1
작년 겨울에 자취방을 옮겼다. 학교까지 걸어서 15분 정도였고, 오래된 원룸이긴 했지만 월세가 주변보다 꽤 저렴했다. 건물은 5층짜리였고 나는 4층, 403호였다. 처음 집을 보러 갔을 때 부동산 아저씨가 이상한 말을 하나 했다. “학생이면 밤늦게 들어올 때도 많겠네.” “네. 아마 과제하면 새벽에도 왔다 갔다 할 것 같아요.” “그래도 옥상은 올라가지 마요.” 갑자기 옥상 얘기가 왜 나오나 싶었다. “옥상이요?” “문도 잠가놨고, 올라가 봐야 아무것도 없어.” 나는 그냥 알겠다고 했다. 실제로 살아보니 별문제는 없었다. 수압이 조금 약하고 방음이 안 되는 것 빼고는. 문제는 이사하고 일주일쯤 뒤부터 시작됐다. 새벽마다 윗집에서 소리가 났다. 끼이이익. 쿵. 끼이이익. 쿵. 무거운 의자 같은 걸 바닥에 끌다가 넘어뜨리는 소리였다. 처음에는 그냥 윗집 사람이 생활 패턴이 이상한가 보다 했다. 그런데 며칠 지나니까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소리가 나는 시간이 항상 똑같았다. **새벽 2시 17분.** 정말 하루도 안 틀렸다. 어느 날은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다가 새벽 2시쯤 집에 들어왔는데,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보고 있으니 또 그 소리가 났다. 끼이이익. 쿵. 시계를 봤다. 2시 17분. 그날 처음으로 조금 소름이 돋았다. 다음 날 집을 나가다가 5층에서 내려오는 아주머니랑 마주쳤다. 나는 그냥 별생각 없이 물었다. “혹시 503호 사시는 분 아세요?” 아주머니가 계단에서 멈췄다. “503호?” “네. 밤마다 의자 끄는 소리가 들려서요.” 아주머니가 나를 잠깐 쳐다보더니 말했다. “학생 몇 호 살아?” “403호요.” 그 말을 듣자마자 표정이 이상해졌다. 그러더니 대답도 안 하고 그냥 내려가 버렸다. 솔직히 그때부터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날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5층에 한번 올라가 봤다. 501호. 502호. 그리고 복도 끝에 503호가 있었다. 문 앞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다. 택배도 없고, 우편물도 없었다. 무엇보다 문손잡이에 오래된 케이블 타이가 묶여 있었다. 사람이 드나드는 집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는 괜히 기분이 나빠져서 바로 내려왔다. 그리고 그날 밤. 일부러 2시 17분까지 안 자고 기다렸다. 2시 16분. 아무 소리도 없었다. 2시 17분. 끼이이익. 역시나 시작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평소와 조금 달랐다. 끼이이익. 쿵. 끼이이익. 쿵. 끼이이익. 그리고 조용해졌다. 나는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쿵. 이번에는 천장이 아니라 **내 현관문 쪽에서 소리가 났다.** 누가 문을 두드린 것 같았다. 잠시 후 다시. 쿵. 쿵. 나는 숨을 죽이고 현관을 바라봤다. 그리고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2시 18분. 문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참 고민하다가 현관문에 달린 작은 렌즈로 밖을 봤다.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우리 집 현관 바로 앞 바닥에 **낡은 나무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등받이가 내 현관문 쪽을 향한 채로. 너무 놀라서 그대로 굳어 있었다. 그리고 몇 초 뒤, 위층에서 다시 소리가 났다. 끼이이익. 나는 다시 천장을 쳐다봤다. 그때 깨달았다. 방금 전까지 내 문 앞에 있는 의자랑 **똑같은 의자를 누군가 위층에서도 끌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집주인에게 전화했다. “혹시 503호에 누가 살아요?” 집주인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왜?” “밤마다 거기서 소리가 나서요.” 그러자 집주인이 말했다. “503호에는 아무도 안 살아.” “언제부터요?” “꽤 됐어.” “그럼 어제 제 문 앞에 있던 의자는요?” “무슨 의자?” 나는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데 의자가 없었다. 바닥에는 먼지만 남아 있었다. 집주인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학생.” “네.” “혹시 새벽에 누가 문 두드려도 열어주지 마.” 순간 말문이 막혔다. “왜요?” 그런데 집주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이상한 걸 물었다. “혹시 의자가 몇 번 움직였는지는 세어봤어?” “네?” “위에서 끄는 소리.” 나는 어젯밤을 떠올렸다. 세 번. 분명 세 번이었다. 내가 대답하자 전화기 너머가 한동안 조용했다. 그리고 집주인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오늘은 집에 들어가지 마.” 뚝. 전화가 끊겼다. 그날은 친구 집에서 잤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에야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아무 일도 없었다. 현관도 멀쩡했고 방 안도 그대로였다. 괜히 겁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책상 위에 처음 보는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A4용지에 프린트된 종이였다. 맨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403호 거주자 주의사항」** 1. 오전 2시 17분 이후 위층에서 가구를 끄는 소리가 들려도 확인하지 마십시오. 2. 소리가 세 번 들렸다면 현관문을 확인하지 마십시오. 3. 현관 앞에 의자가 놓여 있을 경우 절대 방 안으로 들이지 마십시오. 4. 503호에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주민을 믿지 마십시오. 그리고 마지막 5번은 검은색 펜으로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빛에 비춰보니 지워진 글씨가 아주 조금 보였다. 나는 휴대폰 플래시를 켜서 종이를 비췄다. **5. 만약 403호 안에서 이 종이를 발견했다면, 이미 한 번 문을 열어준 것입니다.** 나는 그 문장을 한참 쳐다봤다. 나는 문을 열어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이상했다. 전날 새벽, 나는 분명 현관문을 열지 않았다. 그런데 아침에 집주인과 통화하면서 **의자가 사라졌는지 확인하려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제야 하나 더 생각났다. 처음 이 집을 보러 왔던 날. 부동산 아저씨가 분명 말했다. “옥상은 올라가지 마요.” 그런데 이 건물 구조상 옥상으로 가려면 503호 앞을 지나가야 한다. 그리고 503호 옆 계단에는 내가 이사 온 날부터 작은 안내문 하나가 붙어 있었다.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날 처음 가까이 가서 읽어봤다. **옥상 출입 시 주의사항** 그리고 그 아래, 누군가 빨간 펜으로 한 문장을 적어놨다. **‘403호 사람이 이걸 읽고 있다면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세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내 뒤에서 끼이이익. 의자를 끄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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