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범
처음에는 그냥 고마운 선배였다. 정말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몇 년 전 학교에서 팀과제를 하던 때였다. 당시 나는 장소 알아보기부터 준비물 챙기기, 현장 작업까지 이것저것 맡아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같은 수업을 듣던 한 선배가 그런 나를 꽤 많이 도와줬다. 연락 안 되는 사람들에게 대신 연락도 돌려주고, 교수님께 물어볼 일이 있으면 대신 연락해주기도 했다. 장소도 같이 알아봐 주고, 학교에서 필요한 장비를 빌릴 수 있는지도 확인해줬다. 실제 작업이 있을 때는 직접 와서 손도 보탰다. 그러니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가 보드게임을 하자고 했다. 다른 사람도 한 명 온다고 했는데 늦는다고 해서 한동안 둘만 있었다. 보드게임보다는 자연스럽게 잡담을 하게 됐다. 연애 얘기, 이상형 얘기까지 하던 중에 선배가 뜬금없이 자기는 먹는 약 때문에 성욕이 거의 없다는 말을 꺼냈다. 조금 뜬금없다고 생각했지만, 마침 다른 사람이 도착했고 그날은 그렇게 끝났다. 며칠 뒤에는 시험공부를 하자며 카페에서 만났다. 그날 선배는 다시 그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는 성욕이 없으니 “그렇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말했다. 팔짱을 끼고 내 쪽으로 기대기도 했다. 그러다 집을 한번 구경하면 안 되냐고 물었다. 나는 집은 안 된다고 했다. 그날은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줬고, 선배도 별말 없이 돌아갔다. 여기까지만 해도 그냥 나한테 호감이 있나 보다 했다. 며칠 뒤 다시 카페에서 만났다. 이번에는 칸막이가 있어서 조금 독립된 좌석에 앉았다. 갑자기 선배가 무릎베개를 해주겠다고 했다. 나도 당황해서 ‘어... 뭐, 그래?’ 정도로 받아들였다. 선배가 내 머리를 잡아 자기 무릎 위에 올렸다. 솔직히 여기까지만 해도 뭐지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곧 자기 가슴을 만져볼 거냐고 물었다. 얼굴을 가까이 가져오며 볼에 입을 맞추는 듯한 행동도 했다. 그때부터는 확실히 불편했다. 처음으로 분명하게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날 집에 가는데도 계속 따라오려 했다. 결국 집에 들이는 대신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 정류장에 도착해서는 갑자기 내 허벅지를 만졌다. 몇 번이나 거절했는데, 버스를 타기 직전에는 내 머리를 잡고 갑자기 입을 맞춘 뒤 그대로 타고 가버렸다. 그 뒤 팀과제도 거의 끝났고, 수업은 두 번 정도 남아 있었다. 첫 번째 수업이 끝난 날에는 선배가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집 앞에 와서야 그 사람이 있는 걸 보고 당황했다. 왜 여기까지 온 건지, 순간 머리가 잘 돌아가지도 않았다. 일단 어떻게든 빨리 돌려보냈다. 그리고 다음 수업 날. 이번에는 대놓고 따라왔다. 쉬었다 가고 싶다, 집에 들어가 보면 안 되냐는 식으로 계속 이유를 댔다. 그때는 더 이상 애매하게 말하지 않았다. 다시 집까지 찾아오면 신고하겠다고 했다. 마침 종강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는 그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 일을 겪고 나서야 알았다. 적당히 피하는 것만으로는, 침범해오는 사람도 있다는 걸.
全編無料
コメント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