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애 허가서를 쓴 부부를 봤다
어제 신랑이랑 예능을 하나 봤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다루는 프로그램인데, 나는 원래 이런 걸 좋아한다. 신랑은 옆에서 폰만 보고 있었다. 그날 편은 시작부터 좀 달랐다. 보통은 바람난 배우자 잡아달라는 의뢰인데, 이번엔 의뢰인이 시어머니였다. 아들네 집에 연락 없이 들렀다가 이상한 걸 봤다고 했다. 현관에 낯선 남자 신발이 있었고, 며느리가 문을 늦게 열었고, 집 안 공기가 어딘가 이상했다고. 그날부터 잠이 안 온다고 했다. 아들 자랑도 했다. 어렵게 공부시켜서 철학과 교수까지 됐다고. 조사를 해보니 며느리 외도는 사실이었다. 여기까지는 다들 예상하는 그림이다. 반전은 그다음이었다. 남편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종이를 한 장 써놨다고 했다. 이름이 '자유연애 허가서'였다. 서약서도 아니고 합의서도 아니고 허가서. 누가 누구한테 허락을 해주는 사이인지가 제목에 다 들어 있었다. 내용은 이랬다. 서로 구속하지 않는다. 각자 다른 사람 만나는 걸 인정한다. 나중에 이걸 문제 삼는 쪽이 위약금을 낸다. 둘 다 서명을 했다. 남편이 카메라 앞에서 말한다. 사람이 사람을 가질 수 있는 거냐고. 결혼도 결국 약속 아니냐고. 자기는 이 상황을 어른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이 참 매끄러웠다. 한두 번 해본 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집 돈은 전부 아내 쪽에서 나온다고 했다. 두 사람은 각자 만나던 사람을 정리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얼마 뒤에 며느리 임신 소식이 왔다. 시어머니가 다시 무너졌다. 아무래도 저 아이가 내 손주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든다고. 그래서 탐정에게 또 의뢰를 했다. 저 뱃속의 아이가 우리 아들 아이가 맞느냐고. 결과는, 아니었다. 그런데 남편은 그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게다가 남편은 얼마 전에 자기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라는 걸 알게 된 상태였다. 그런 사람이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아이가 아닌 거 알아. 그래도 내가 잘 키울게." 남의 아이인데 산부인과도 같이 다녔다. 시어머니는 난리가 났다. 그런데 아들이 어머니를 설득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지지리 궁상으로 사는 건 죽어도 싫다고. 며느리는 부잣집 딸이었다. 사위한테 차도 해주고 집도 해줄 만큼. 결국 시어머니도 돈을 택했다. 다 보고 나서 신랑이 소파에서 몸을 돌렸다. "너라면?" "뭐가." "저 상황이면." 나는 0.5초 만에 대답했다. "미쳤네 미쳤네. 저게 사람이야?" 신랑이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리고 설거지하러 일어났다. 거기서 끝난 줄 알았다.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 그 얘기가 다시 떠올랐다. 멍하니 서서, 나는 진지하게 그 상황에 나를 넣어보고 있었다. 첫 번째. 이혼. 당연히 이혼이지. 고민할 것도 없지. 그런데 바로 다음 질문이 따라붙는다. 그래서 나가서 뭐 먹고 사는데. 나는 돈 없는 집에서 자랐다. 중학교 때 아빠가 보증을 잘못 서서 우리 집이 어떻게
남은 분량 60%
댓글0
댓글 0개가 숨겨져 있어요
스포일러 방지 · 결말을 열면 모두 보여요